외국에 나와보니

 어글리 코리안 어글리 코리안 하는 거 알만하다.
부끄럽게도 한국인은 한국을 벗어나면 자신이 가진 모든 책임에서 해방되는 줄 안다.
뭐, 간단한 예로 내가 인사를 해.
그럼 상대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떨까? 당연히 받겠지. 한국에서는 예의도 예의지만 필요에 의해서 사람을 잡는 수 밖에 없기도 하고. 그치만, 한국인끼리건 아니건 인사는 기본중의 기본, 근데 여기는 안받아.
오늘은 일본인 친구가 날더러 의자에 앉을때 다리를 의자위에 세우고 앉는 일이 한국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줄 알았다고 한다. 같은 클래스의 놈이 그렇게 맨날 앉는다고 한다. 뭐, 나야 선생이 때리건 말건 고등학교때도 신발벗고 책상다리하고 앉기는 했다만, 난 언제나 책임을 졌다. 몸으로. 얘네는 한국에서 절대 못할짓을 여기서 푸는 느낌이다.
 오해받는 일을 한다는 건, 관계없다. 멍청이가 멍청이 취급받는 건데 뭐. 근데, 한국전체가 오해받는 일은 하면 안되는 거다.
그에대해 일본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했지.
 또, 영어를 배우는 태도 또한 그렇다. 자신이 다른 나라 말을 쓴다는 자각은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간단한 예로 억양. 서울사람 언제나 자신이 서울말쓰고 서울산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더라. 근데, 여기서 잘난척해야 아무도 안 알아준다. 어이없게도 여기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국억양 그중 특히 서울!! 서울억양 그대로 영어를 한다. 문법을 잘하는게 대충영어 잘한다고 생각하는 먹퉁들도 엄청많고. 문법도 언어의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만, 말한마디 똑바로 못하는 것들이 깝치는 것은 웃긴거다. 그러면서 일본인보고 발음 못 알아듣겠다고 타박한다. 꼴같잖다.
 제일 문제는, 이런 걸 한국애들은 잘 모르는데 한국인이 매일 무시하는 일본인도 다 알아챈다는 거다.
여유없이 고등학교까지 몰아치고 대학가서 술만 쳐마신 인간이 판치는 한국에 진지하게 자신을 고민한 사람은 적다.
아니, 진지하게 고민을 해도 깊이가 일본인 만큼도 못 미친다. 적어도 그들은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는 안다. 한국인은 그것조차 모른다. 시민? 자격이 없다. 무슨 힘을 가졌는지 댓가가 뭔지도 모르는 멍청이한테 다 컸으니 대충 주민등록증 찍어주니까 진짜 똑똑한 줄 안다. 이건 부끄러운거다. 자유가 어디로 옮겨가면 부풀어나나? 여기는 외국이니까 뭘하든 오케인가?
 대신 미친짓하면 보호해줄 어른도 이해해줄 편도 없다. 미쳐서 뭐가 뭔지 구분도 못하고.
여유가 없다보니 자신에 대해 고민하거나 자신의 철학을 정하는 일을 너무 미룬다. 어린애다. 공부가 앉아서 외우는 걸로 땡나는 줄 아는 바보들은 나갈 생각을 못한다. 바보의 벽이라는 일본인의 글이 생각난다. 난 똑똑하므로 저어기 멀리있는 나의 벽은 못봐도 됨. 그들은 언제나 그런생각을 한다. 벽을 찾아 부수는 일이 인간이 발전하는 일임에도 안가르쳐주면 모르는 건가?
많이보고 많이 느끼라고 나온 곳에서 쳐 한국인들끼리 술만 마시고, 불쌍한 부모등골 쳐먹는 놈들이 너무많다.
어쩌면 걔들정도도 여기선 예의바른 건지도 모르지만, 아닌건 아닌거다. 여기도 눈이 있고 앞뒤구분할 줄 아는 인간이 사는 곳이다. 멍청이들의 행동에 한국전체가 의심받는 일도 그래서 생기고, 한국인전체를 변호하기위해 안되는 영어실력 끌어다 힘쓰는 경우도 그래서 생기는 거다.
 이걸 걔들한테 말하면 걔네는 그냥 그렇게 말하더라. 여기는 오스트레일리아. 
여기의 법칙이 있노라고. 난 그 씨발놈의 법칙이 그들만의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현철이 너라면 이글을 보겠지. 
너희 동네에도 내가 말하는 멍청이들이 한트럭 살지도 모른다.
뭐가 한국인이냐. 난 적어도 한국을 엄청 사랑하지는 않는다만, 한국을 욕먹게 해서 나까지 병신되고 싶지는 않다.
바보는 바보다. 넌 내가 말 안해도 너의 길을 가겠지만, 언제나 책임은 너에게 있다. 설사, 잘못이 남한테 있어도, 네가 결국 피해자라해도 책임은 언제나 자신의 것이다. 절대로 멍청이들이랑 깊이 어울리지마라. 그들 자체에게도 위험성이 있고, 동시에 그들이 만들어낸 멍청한 한국문화가 사람 망쳐. 억지로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아니면 외국인한테 배울기회도 많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 멍청한 놈들 투성이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한국보다 잘난줄아는 멍청이들이 높은 코로 하늘을 찌른다. 우리나라보다 인터넷도 느리고 산업도 없고, 놀러가는데도 들판이라해도 그들은 그들이 잘난줄안다. 그래도 배울점은 언제나 있다. 이나라 사람들은 적어도 인생을 일만으로 고민하지 않고, 인간의 가치척도를 돈과 얼굴로만 보는 멍청이들이 한국보다 적다. 아메리카도 똑같겠지. 병신들 투성이라도 세계제일 국민이라는 콧대만은 하늘을 찌른다던지 하는. 그래도 배울점은 있다.
 언제나 마음을 열고 쳐다봐라.
기회가 있으면 한국인과 항상비교하고, 항상 한걸음 더 뻗는 기회를 만들어라.
이건 너에게 하는 조언이고 나한테 하는 다짐이다. 

 한국인들과 많이 못 친해졌다. 뭐 그래도 한 스무명과는 알고 지낸다. 그 중 다섯정도는 친한편이다.
난 더 이상은 내 필요에 의해서 못 만들겠다. 이건 너무 심하다. 오늘따라 한국인이 엄청 부끄럽다. 난 자랑스런 한국인은 아니지만, 오히려 한국인들이 부끄러워하는 한국인이지만, 외국인들한테 욕먹는 바보는 아니다. 한국에서 인정받은만큼 여기서 받으리라 착각은 안한다. 묘하게 거리를 벌리는 지금이 훨씬 낫다. 혹여 주변의 한국인이 먹퉁짓을 하면, 떼끼놈은 못해줘도 자신몸을 지켜라.
아니 지키자.

by 과일소주 | 2007/12/12 23:29 | 트랙백 | 덧글(2)

닮아???










다 좋은데 다 여자임.
정말 닮은 사람이 있긴한가????
근데 우에토아야랑 얼굴을 겹치니 잠시 미녀가 지나감. 난 미인인가??? 몰프로 착시를 일으키는 건가?
근데 살짝 반함.
왠지 억울한 기분에 나는 재시도를 했고 결국 남자를 하나 건짐.
첫사진 보다 정확성을 높이려고 자다깬 얼굴을 정면에서 크게 찍음. 사이트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꽃보다남자의 히어로 오구리 슌 이 걸림. 겨우 한명.
사실은 나카시마 미카는 삼회실행에 세번이 걸려 나왔지만, 여자라서 기분이 이상함. 그래서 일부러 오구리슌을 올렸다.
뭐, 나카시마 미카도 올렸지만.
이거 정확도가 있는 건가 하는 마음에 동생을 시험해보자, 비슷한 얼굴임에도 남자가 두개나 걸려옴.
뭐야, 진짜로.
아래는 시험용 사진





































































by 과일소주 | 2007/10/24 08:06 | 트랙백 | 덧글(1)

만화에서 기대하기 힘든 일. 만화에서 기대해야 할 일.

사진은 SF계의 명작 메가맨.

  저는 누군가 만화속에서 과학을 찾는 이야기를 한다면 퍼스트건담의 한장면을 예로듭니다.
지금 그 그림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만화속의 거대 모함인 화이트 베이스의 연료는 종류는 알 수 없지만 화석연료입니다.
게다가 그 장면 이전에는 브라이트가 속력을 높이라고 말하죠. 속력을 높이기위해 연료를 더 넣고 있는겁니다.
 최근 그렌라간의 시공워프에 대해 쓴글을 봤는데,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광속이상으로 나는동안 지구시간과의 차이로 지구사람들은 폭삭늙어서 나오는게 맞다는 생각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 말했던 시공이동의 형식은 공간사이에 타차원을 두고 거기를 숏컷삼아서 시공이동(드릴이라는 설정을 보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공간도 돌파!)한다는 설정이었으니 아마 처음부터 개념상의 차이는 있었겠습니다만, 그것조차 비과학인 이론일 뿐입니다.

 대체의 이런 오류는 과학적으로 개념에 해당하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던가 시공에 관한 부분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시공에 대한 파악은 개념적으로 밖에는 정립이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특수상대성이론 하는 것들은 이렇게 된다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 요소마저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다하는 점을 중점적으로 봐주시는게 타당합니다. 현재 인간의 빛의 속도를 따라잡지도 못하고 그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더욱 무리이기에 이상황에서의 인간이 과연 시간을 타고 넘을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힘듭니다. 빛의 속도라는 기준도 현재까지 밝혀진 물질의 이동속도중 가장 빠르다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아인슈타인의 발상은 우리가 아는 보통의 시간에 존재하는 물질A와 시간과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물질B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같은 문제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말이 길어져 버렸네.
 또한 이런 개념에서 공간은 시간의 완전한 지배가 있다면 공간에서 자유롭다는 결과가 되기때문에 시공을 한꺼번에 묶어서 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한가지 더. 워프의 경우는 몇가지가 있겠지만, 공간사이에 구멍을 뚫어 시간을 단축시키는, 즉 한국적으로 말하면 축지법같은 방법이 있겠고, 가속을 시간속도 이상으로 해서 초고속 이동을 통해 공간을 지배하다시피하는 이동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마법과 같은 요소가 아니라면, 인간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방법은 아마 이정도겠죠.
 우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의 문제인데, 자주나오는 블랙홀이나 웜홀 같은 경우, 실존하기는 하지만 중력의 힘이 초밀집된 초중력의 존재라는 것 이외에 다른 연구 관찰은 아직 증명에 해당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블랙홀에 빠진 이후에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알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누군가가 화이트홀(블랙홀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빠져나오게 되어 결과적으로 우주의 질량비나 존재를 망가뜨리지 않는다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했고, 그사이에 웜홀(지렁이가 파고다니는 길)이 있어 공간이나 시간적 요소를 초월해 다른 곳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이죠. 이것도 결국 이론입니다.
 또 타임 패러독스나 그에 입각해서 평행우주론을 해석하는 입장도, 결국 이론일 뿐이기에 논리적 받침은 있을지라도 참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하기 힘듭니다. 특히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나오는 이시간 동위체가 서로를 만나지 않는다 하는 설정은 타임패러독스를 두려워한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스즈미야 하루히의 세계의 평행우주론은 아마도 타임패러독스랑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거기서의 오류는 꽤 많은 편이지만. 그것이 소설이라는 점은 그전에 알아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선택적으로 이론을 가져다 쓴 겁니다.

 다시 원래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렌라간의 그 장면에서 앞에서 설명을 해주는데 그렌라간과 안티 스파이럴의 싸움중에 안티 스파이럴이 알 수 없는 힘으로 공간에 간섭한다는 설정입니다. 안티스파이럴은 이전에 공간과 공간사이에 차원을 만들어 그 사이에서 나선족을 관리합니다. 그러니까 공간에 구멍을 뚫어서 지구에 가까이 갔다는 이야기죠.
 만약 과학으로 따질것 같으면 행성을 초월하는 크기의 초에너지체가 공간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나타난다면 이미 중력이상이나 태양의 파장의 침입으로 지구는 초토화입니다. 늙고 말고 할것도 없이 모조리 죽는 거죠. 그렌라간의 과학은 너무나도 선택적이기 때문에 따질 생각조차 안듭니다.

 그런걸 따지셨다면, 이런건 생각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피구왕 통키를 생각해봅시다. 일단 처음에 이해가 안가는 장면은 통키나 다른 선수들이 사람키의 세배가 넘는 점프를 한다는 것이죠. 뭐 좋습니다. 이 만화에서 여기가 지구란 말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중력이 약하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한 열심히 점프하면 초등학생도 오십센치정도는 뛰니까 백이십의 세배면 삼백육십. 한 지구중력에 비해 일곱 배정도 약한 행성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무서운 위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은 그럼에도 그들은 걸음을 잘 걷는다는 거 정도겠죠.
게다가  필살슛같은 경우 그들이 소학생이라고 한데 비해, 회전회오리 슛 같은 경우 몸을 비틀어 근육의 탄성만을 이용해 엄청난 회전으로 말도 안되는 축으로 회전을 시켜 슛을 날립니다. 파워슛 같은 경우 아예 공을 짜부러뜨렸다가 펼치면서 날리는 난감한 방법으로 공을 회전시키기도(!)하고 땅을 부술정도의 위력도 가집니다. 라이벌인 타이거의 스카이 슛은 공중에서 정확한 조준을 하는 것으로 보아 시력이 참새정도의 수준은 될것으로 예상할수 있죠. 번개슛은 상상 초월. 다른 장치 없이 회전만으로 전기를 끌어모으는 슛이고, 통키의 필살 슛 불꽃슛은 엄청난 회전과 속도로 공기와의 마찰로 불꽃을 일으키는 슛입니다. 
  이 세계에서 우리 과학자들은 고작해야 저선수들이 던지는 공조차 만들 지식이 없습니다. 저런 탄성에 저정도 충격을 버티면서 초등학생도 던질만큼(선수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벼운 물질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거죠.
 축구왕 슛돌이의 독수리슛, 총알슛하는 것이 유소년팀의 슛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 팀이나 프로팀은 아예 공이 무기 수준이 될겁니다. 만화란건 그런겁니다. 과학이 무슨의미가 있겠습니까.
만화에서 과학이란, 부정해서 과장을 이끌어내고, 선택적으로 사용해서 소재를 불리고 비슷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실과의 유사성을 추가해주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게 다죠. 만화에서 그렇게까지 과학의 존재감이 약한이유는 그보다 꿈과 희망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렌라간에서 시몬은 용기와 의지만으로 합체하고, 상대의 전함을 뺏고, 자신의 기체마저 수복하기도 합니다. 그 뿐 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깊게 생각하는 것 만으로 공간도 넘어버립니다. 나선의 힘을 완전히 흡수하는 바다에서도 그 희망과 용기가 꺼지지 않기 때문에 다음을 노릴 수 있었죠. 그런겁니다. 그렌라간의 세계에서는 과학의 부족부분에 꿈과 희망과 용기와 사랑이 가득차 있는 겁니다.

 저는 원래 분석적으로 말하고 논리적 빈틈이나 과학적으로 부족한 걸 따지기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렌라간을 보면서는 그런생각을 한번도 못해봤네요. 나이가 들어서 이건 만화니까 하고 타협했다기 보다, 이런마음이 먼저 들더군요.
 '저세상은, 아니 저세상만큼은 저래도 좋은거다. 세계 어딘가 만큼은 의지가 힘이되고 노력과 사랑이 배신하지않는 세계가 있어도 좋지 안겠나.'
 현실의 각박함을 녹일만큼 뜨거운 만화였습니다. 동심이란건 그런 모양입니다.
아니면, 이제 저 만화가 아니라면 꿈과 희망 사랑따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절박함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by 과일소주 | 2007/10/08 03:24 | 트랙백 | 덧글(2)

판타지는 어때?


사진은 식사중.

오늘은 판타지 소설 두권을 빌렸다. 강철의 열제 16권과 비뢰도 23권이다.
뭐 비뢰도는 무협이네 하는 말은 듣고싶지도 않다. 무슨책이면 어떠랴.
그 작가도 무협이라는 틀로만 이글을 남겨두고 싶어하는것 같지않으니 내 말에 불만스럽지도 않으리라.
나는 대체로 글을 안가리고 읽는다.
화장실에서 책이없으면 샴푸 린스 세제 설명서도 좀 읽어보고, 뒤에 성경이 있으면 전혀 신따위 믿지않지만 읽는다.
생각없이 읽는다기 보다는 어떤 사상적 바탕이나 지식도 내틀로 받아들인다는 가치관의 문제다.
글의 수준이나 내용은 큰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한 친구한테는 다른 문제다.
사실 판타지중 인기나 인정받는 이영도씨 작품(그는 작품이라는 말도 별로 안좋아한다.)도 사실 문학적 기준으로 보면 현란한척하는 기교이외에 특별히 뛰어난 부분은 없다. 그보다 짧은 노인과 바다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같은 소설에 비해 하등 나은점이 없다.
누군가는 그런 작품은 정말 뛰어난 글이니까 이길수 없는 거고, 서점에 있는 다른 한국소설과는 비등하다 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딱잘라 이야기 할수있다. 그정도라면 한국소설이 수준미달인거다.
자칭 문학인들의 눈에는 어떠하겠는가.
어쩌면 혐오 비슷한 감정도 섞일지 모른다. 저런 글과는 우리가 칭송하는 글과 비교도 하지 말아달라는 얼굴일지도 모른다.
나는 비교도 하지않는다. 뭐 문학인도 아니고 글읽는걸 즐기는 사람일 뿐이지만 그들의 혐오 비슷한 감정과 현실성의 결여하나만으로 판타지나 무협이 저급이다 폄하한다면 그건 절대 문학인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명작중 픽션이 아닌것이 얼마나 되나?
수많은 픽션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허구의 세계 그것이 소설이다. 물론 좀 있을법한 이야기에 관해 하면 현실성이 좀 더 있기에 인간이 읽으면서 가지는 감정이 동질감같은 이유로 하여 글에 몰입력을 추가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허구다.
 어떤것은 시대가 어떤것은 사건이 어떤것은 인간이 허구로 되어있다.
문학적으로 함량미달인 글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판타지는 소설이 아니다 라고 규정하는 작태는 문학인은 머리가 굳었소 하고 광고하는 꼴밖에는 안된다. 글재주도 없는 사람들이 판타지를 쓴다. 그사람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꾸며쓸수있는가? 엘프를? 드워프를 꾸며쓰는가?  불가능하다. 종족이 다르다는 것도 고작 어느정도다. 그들은 인간에 관해서는 완전한 사실을 쓴다. 식견이 짧을 지언정. 세계가 틀리고 마법이 왔다갔다하고 무공을 몇합겨룬다고 해서 인간이라는 요소에 대하여 그리는 것이 다르지는 않다.
異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글을 쓴다면 환경만이 허구다. 인간이라는 요소는 늘 있을법한 요소다. 그들도 색안경을 벗고 보면 훌륭한 소설가인것이다.
 장르라는 것이 사소한 차이로 결정나는 것이기에 함부로 말할것은 아니지만, 판타지를 쓰는 대부분의 작가가 함량미달의 글을 쓰더라도 싸잡아 쓰레기로 모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다.
 나는 나름 세상의 예술이란 것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만약 한국에서 지금 문학이라는 예술이 해야할일이 있다면, 그 기능을 문학은 다하지 못하고 있다.
잘난체 콧대높이고 못쓴글을 욕하라고 그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닌데 그들은 독선과 아집으로 세상에 실수하는 것이다.
욕심에 작품성만 높이고 싶어해서, 언젠가 인정받는 날을 기대하면서 글을 쓰겠지.
 어떤 소중한 뜻을 담았다고 해도 대중성없는 글을 쓴다면 무시당해도 할말없는 거다.
난 그런 주제에 '내글과 저글은 비교를 말아다오'하는 태도가 꼴같잖다. 배웠다는 문학인끼리 인정하고 자네 글잘쓰네 하는 게 전부지 왠만한 사람들 글로 밥먹고 살 수 있나? 어차피 글쓰는 것도 혼자 집에서 보려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려는 것이다. 대중성이 전제로 되어있다는 거다. 근데도 꼭 못알아먹을 기교 하나는 아름답다 하면서 넣고 포기도 못하고. 우리나라가 썩어서 문학을 못보네 한탄하고, 글을 안읽는 한국인이 문제다 화내고. 난 누군가가 좀 읽을만한 글을 쓰길 기대했는데, 한국소설을 읽을 때는 보통 판타지만도 못한 참담한 기분이든다. 의도는 알겠는데 대체로 정말 겉멋만 든 글이다. 전부는 아니고. 

대중성이라는 면에서 판타지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 문학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혹은 욕망들을 거짓말따위 별로 할 줄 모르는 순수한 글솜씨로 큰소리로 외친다.
가끔은 너무 악취미적이고 다듬어지지 못했고, 어떤것은 글의 구성이라곤 제대로 된곳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지만 할말 다하는 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지않는가. 아마추어의 세계라지만 그어떤 프로의 함성보다 깊이 내가슴에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영도씨나 홍정훈인가 하는 사람의 글이 좋다고는 말못하겠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글 저글읽으면 어느정도가 잘쓴다 하는것은 안다. 물론 취향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더로근가 하는 그 소설은 나의 상상과 유사해서 취향이라면 맞았지만 읽는 것은 고역이었다. 드래곤 라자도 나중에는 기교를 부리는 게 폭주하기도 하고 글이 좀 기름져져서 읽는 동안 목이다 뻑뻑했다. 하지만, 유치한 글일 지언정 그들은 자신의 유치함을 진지하게 대했다는 데 칭찬한다.
친구의 용서 안하는 태도를 보면서 한번 생각해봤다.
짤없이 못쓴글. 저런게 출판된다는게 웃길지경등. 그는 조용한 어조로 말했지만 참혹한 평을 내린바있다.
그땐 나도 겉멋만 들었지하고 같이 말하기도 했으니 이러한 변호글은 웃긴건지도 모른다.

by 과일소주 | 2007/10/02 15:37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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